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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우리의 문화, 교자상. 큰 상, 한복에 관하여.

베틀한복 2010. 4. 9. 18:13

큰상을 앞에 초야를 맞은 신랑과 신부 - <br>큰상은 첫날밤 신랑 신부를 위해서 차린 상으로 서민은 평생에 한번 받는 상으로 통했다.
 


요즘은 큰상이란 건 거의 대부분의 지방에서 없어진 풍습입니다만 과거엔 '큰상'이란 음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상'은 이바지처럼 신부쪽에서 신랑쪽으로 일방적으로 보내는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큰상에 대해서 이전에도 몇 번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다시 설명을 드린다면
 
옛날 전통혼례 때는 결혼식을 신부의 집에서 올렸습니다.

신랑이 신부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신부집에서 새사위에게

큰상을 차려 줍니다. 큰상이란 것은 음식높이를 30센티이상 높게 쌓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신랑이 큰상을 받으면 그냥 먹는 시늉만하고 그 음식은

고스란히 신랑의 집으로 보내지는데, 신부집에서 신랑의 집이 멀 때는

상자에 담아서 보냈습니다만 가까운 경우에는 상째로 들고 가게 됩니다.

크다란 상 밑에다 긴 장대 두개를 받혀서 마치 가마처럼 들고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들고 다니는 상을 '가마상'이란 뜻으로 '교자상'이라고 합니다.


헌수 : 헌수란 회갑을 맞은 사람에게 자녀들이 큰상을 차려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면서 축수를 하는 의례이다. (딸들의 헌수)

 

 
요즘 왠만한 집마다 손님이 많이 올 때 펼쳐 내는 교자상이 하나쯤은 있잖아요?


바로 그게 음식을 차려 가마처럼 들고 갈 수 있는 상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큰상' 위와 같이 신랑집으로 보내지지만
반대로 신부가 결혼식을 마치고 3일째 되는 말

시댁으로 들어 가는데
이를 '신행'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부가 신행을 할 때 시부모에게 드릴 예물인 폐백이며, 이바지음식

그리고 예단과 예물을 모두 한꺼번에 갖고 갔었습니다.

그렇게 신부가 시댁에 도착하여 시부모에게 폐백을 올리는 현구고례를 치루고 나면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큰상'을 차려 주게 되는데,

이 큰상 역시 신랑이 신부집에서 받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먹는 시늉만 하고선

고스란히 신부의 친정으로 똑같은 방법으로 보내졌던 것입니다.

 결국은 '큰상'이란 신랑과 신부 양쪽에서 똑같이 주고 받는 음식이었습니다.

좌우간 옛날엔 음식을 푸짐하게 먹을 기회가 별로 없던 때라서
그런 식으로 서로 음식을 주고 받아서

먹었습니다만
요즘은 그런 때가 아니라도 걸핏하면 옛날의 잔치 때보다 더 잘 먹습니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많은 음식을 주고 받아도 사실 먹을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안주고 안받으면 피차에 편한 바 없어지게 된 풍습입니다.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 (宗廟) .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의 사당.
종묘의 정전에는 19실(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 신주를 모셨으며,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및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의 신주를 모셨다.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큰상'을 조상님께 드리는 음식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옛날에는 집안에 사당이 있으며 그곳에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는 집이 많았던 바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당에 모셔진 조상님들께 인사(제사)를 드렸습니다.

신부집에 사주를 보낼 때도 출발하기 전에 먼저 사당에 고하고,

함을 보낼 때도 역시 사당에 고한 다음에 신부 집으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새며느리를 맞게 되면 당연히 사당에 모셔진 조상님께도 인사를 시켰습니다.

당연히 사당의 조상님께 드리는 음식도 따로 장만을 했습니다만

큰상은 아니었으며 그런 음식은 훨씬 간소하게 준비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큰상은 조상님께 드리기 위한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큰상은 위에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순전히 먹기 위한 음식이었습니다만

이바지는 큰상과는 성격이 좀 다른 음식이었습니다.

이바지 음식은 신부의 집에서 장만해 가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주로 반찬위주였습니다.

그렇게 친정에서 마련해간 이바지로 신행한지 3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새며느리가 부엌에 들어가 시부모님의 진지상을 차려 드리는데

그렇게 며느리가 친정에서 차려온 음식으로 차려진 상을 받아서

음식을 먹어봄으로써 며느리 친정의 음식맛을 통해 며느리의 입맛을 짐작하여

앞으로 새며느리가 시댁의 음식을 장만할 때 시댁식구들의

입맛에 맞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며느리 사전교육용 성격이었습니다.

( 출처 - http://wefblog.danmee.chosun.com/vaceo )




점점 생소해져가기 까지하는 우리의 전통 문화 양식들입니다.

꾸준히 널리 알려서 사라지지 않게 보존시키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래에는 사당을 집 안에 모시는 가문이 거의 없고 쾌쾌묵은 옛날 방식이라고 하여서

간소하게 없어지는 경우도 많은 듯 싶습니다.

수가 적어질 수록 그 가치는 높아져서 가격이 천차만별로 올라가버리고, 훗날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되어버리는 것들처럼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접하지 않더라도 소중히 간직할 수 있게끔

되어야한다고 생각해봅니다. 전통 복식의 한복 모양 보여드릴게요.
 
 
고급스러운 양단 재질로 만든 한복 사진입니다.

 

금색 저고리에 분홍색 치마는 옛 왕들도 입을 수 없었던 색감이었으나 조선 말기에 왕들이 입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서민들 역시 큰 잔치가 있을 때 입기 시작했던 색감입니다.

 

 

왼쪽 사진은 체리핑크색 저고리에 금색으로 꽃 그림을 그려넣고 검은색 모본단에 은박을 넣은

 

화려한 느낌의 한복입니다. 전통 복식에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해서 화려해진 한복의 디자인입니다.

 

오른쪽은 같은 치마에 분홍색 저고리를 입고 저고리에는 그림 대신 은박을 넣고 끝동에 금색 원단을 댄

 

은색과 금색의 부유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의 한복입니다.

 

오늘은 이 정도 색감만 보여드립니다. 전통 복식과 현대 복식에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전통이라고 해도 한복 역시 옛날에는 유행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저고리가 짧아진다던지..

 

길어진다던지, 치마에 고름을 덧댄다던지 해서 다양한 패턴을 주었었습니다.

 

물론, 가장 사랑하던 것은 쪽빛과 흰색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왕이 아무리 명령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

 

부분이었죠. 그만큼 우리 민족의 청렴의 상징, 순백 사랑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전통문화가 퇴색되어 가고 있음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좀 더 아름다운 우리 전통옷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포스팅을 마쳐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